23세, 학위도 없던 젊은 여성이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 섬의 침팬지 서식지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난항이었다. 백색 유인원을 처음 본 침팬지들은 제인을 보면 도망치기 일쑤였고, 비가 오는 날이면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침팬지와 동고동락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제인은 인간의 정의를 통째로 뒤흔든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간과 침팬지의 DNA의 98.6%가 동일하다. 감정의 표현 방식도, 행동 양식도 인간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침팬지. 그리고 제인 구달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986년 그녀가 시카고 학회에서 목도한 충격적인 장면들은 제인 구달을 자연스럽게 활동가의 길로 이끌었다. 의학 실험, 사냥, 납치, 서식지 파괴 등 인간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침팬지를 구하기 위해 나선 제인 구달이 찾은 답은 무엇일까?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했다. 그리고 이는 제인 구달이 활동가로 나선 이유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제인은 전 세계를 돌며 만난 젊은이들로부터 희망을 찾는다. 65개국, 100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인 ‘뿌리와 새싹’이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 감소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기 때문이다. 제인 구달이 현재 가장 열정을 쏟고 있는 일이라고 고백한 ‘뿌리와 새싹’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또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중에 아프리카로 가서 야생 동물과 함께 살며 그들에 관한 책을 쓸 거야” 10살짜리 영국 소녀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그녀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지지와 응원 덕에 꿈을 이룰 수 있게 된 제인 구달은 오늘 또 다른 꿈을 꾼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인간과 동물, 환경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의 다양성 문제는 꽤 색다르며 독특하다. 지난 200년간 모든 정치 공동체는 민족 국가 개념으로 바뀌었고, 지금 같은 세계를 이룬 민족 국가들의 목표는 모두가 하나 되는 ‘우리’라는 개념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지난 50~60년, 다문화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양한 소수 집단이 각자의 차이를 존중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이란 가치와 번영, 민주주의, 평화, 연대라는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을까?
오늘날 사실상 모두가 적절한 정치 체제라고 생각하는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윌 킴리카 교수는 그 답이 ‘민족주의’에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포용을 목표로 하는 복지 국가 형성에도 민족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하는데. 민주주의와 복지 국가 형성에 민족을 바탕으로 한 정치 체제, 민족주의는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국민 형성 과정엔 일반적으로 민족 말살이 따른다” 정치학자 워커 코너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지금까지 가장 훌륭히 자리 잡은 정치 질서인 ‘민주주의’와 ‘복지 국가’ 양쪽 모두에 필요한 공동의 소속감을 형성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해온 민족주의.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민족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민주적인 국민 복지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소수 민족의 희생을 그 대가로 삼았기 때문이다. 소외당하며 권리를 빼앗기고, 최악의 경우 집단 학살까지 당한 소수 민족들. 민족주의가 만든 안타까운 소수민족의 희생의 역사를 살펴본다.
과거 수많은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복지 국가를 이루기 위해선 소수민족의 희생을 불가피한 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50여 년에 걸쳐 을 비롯한 관점의 변화는 민족주의적 연대라는 핑계로 소수자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감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다문화 민족국가 건설은 가능한 걸까? 지난 60년 사이 많은 국가들이 참여한 소위 ‘다문화주의 실험’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저 나란히 살면서 서로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다문화주의적 접근은 완전히 실패했다."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는 주장을 해온 앙겔라 메르켈. 이러한 주장을 해온 건 앙겔라 메르켈 뿐만이 아니다. 윌 킴리카 교수는 해마다 유명한 학자, 정치가가 최소 한 명씩은 나서서 다문화주의의 종말을 확고히 선언해왔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그들의 주장대로 실패했을까? 성공했을까?
“소수 민족도 생존권, 자치권, 자결권을 누려야 한다” 소수 민족을 보호할 근거를 공산주의에서 찾은 레닌과 스탈린. 마오쩌둥도 진정한 공산주의라면 소수자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 말처럼 공산주의는 소수민족을 인정하며, 지켜왔을까? 한편 1971년, 세계 최초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채택한 캐나다. 때문에 윌 킴리카 교수는 많은 캐나다인들이 미국인에 비해 토착민을 잘 대우해왔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했다. 캐나다는 그동안 어떻게 토착민을 대우해왔던 걸까?
종이를 찢거나, 난초를 망가뜨릴 때와 달리 고양이를 괴롭힐 때, 우리는 왜 그러한 행동이 잘못됐다고 느낄까? 그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괴롭히고 해치는 건 정당화 될 수 없다. 죽음은 인간의 것만이 아니라 동물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따르는 양육강식의 논리를 벗어나 동물을 해치는 주체는 주로 인간이다. 셸리 케이건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사유하는 것에서부터 삶의 가치와 죽음의 본질을 탐색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자 한다.
셸리 케이건은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인정한 이들에 묻는다. 동물이 중요하다고 해서 동물과 인간이 똑같이 중요한가? 동물을 죽이는 게 사람을 죽이는 것만큼 나쁠까? 동물과 인간의 도덕적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곱씹게 만드는 그의 질문들은 다양한 상황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만약 사람과 동물을 죽일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특별한 이유를 넘어 정말 죽일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죽여도 괜찮을까?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가치가 얽힌 복잡한 문제에 과연 당신은 어떤 답을 내릴 것인가.
살해되지 않을 권리는 사람과 동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죽이는 건 나쁘다. 그렇다면 죽이는 건 왜 잘못된 걸까? 살인은 명백하게 불법이며 옳지 않은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넘어서, 셸리 케이건은 살인이란 행위 그 자체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낱낱이 파헤치고자 한다. 누군가를 죽이는 게 잘못인 이유는 또한 인간과 동물의 도덕적 차이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이를 설명하는 셸리 케이건의 철학적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무엇이 인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지를 곱씹게 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두려워한다. 누군가가 죽으면 슬픔에 빠지고,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죽음을 미루기 위해 치료를 받는다. 많은 이들은 죽음을 나쁜 것으로 여긴다. 대체 죽음은 왜 나쁜 걸까? 과거로 돌아가 보면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철학적 입장도 있었다.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셸리 케이건은 고대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죽음에 대한 철학자들의 논거를 분석하며 답을 찾아간다. 더불어 손에 닿지 않는 듯한 막연한 ‘죽음’이란 주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셸리 케이건의 철학적 질문들이 이어진다.
죽음이 나쁜 거라면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도 나쁘다고 해야할까? 자살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셸리 케이건은 꽤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살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셸리 케이건은 그 주장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살이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 의해 이뤄지는지 논리적으로 풀어내며, 대부분의 자살이 왜 비합리적인지 조목조목 파헤친다. 뒤죽박죽인 삶 속에서 자살로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 속의 오류를 철학적으로 짚어내며,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