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표현주의 양식은 당대인의 반감을 사는 원인이 됐는데, 〈키스〉를 그릴 당시 클림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빈 대학의 천장 도안으로 그린 〈철학〉, 〈의학〉, 〈법학〉 시리즈가 화근이었다. 그는 이 천장화를 이유로 통렬한 경멸을 받고 있었다.
작품 속의 나체로 인해 그의 철학, 의학, 법학에 대한 해석은 포르노로 비하됐고, ‘비정상적인 초과’로 평판을 손상시켰다는 평으로 내리막길을 걷었다.
하지만 그의 생애 가장 유명한 작품 〈키스〉는 이러한 평을 한 번에 뒤집어 놨고, 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벨베데레 박물관에서 구매해,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벨베데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