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울음소리 같은, 그런 소리들이 자꾸 앵앵거려가지고 ...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서 울었어요” -무속인 2017년 어느 날, 한 무속인이 경기도 안산의 명산에서 기도를 드리고 난 뒤, 차를 타고 해변의 한 섬마을을 지나치다가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지며 귀에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상한 체험을 한 무속인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지역을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대체 그 섬은 어디였을까, 그리고 울음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선감도가 삼킨 아이들 섬의 이름은 선감도(仙甘島). 이곳에는 1942년 일제 강점기부터 1982년까지 ‘선감학원’이라는 소년 수용시설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소위 ‘부랑아’ 즉, 고아나 걸식아동을 구호한다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참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일하는 양이 적고 동작이 느리다면서 이제 머리통도 치고 조인트도 까고” “새우젓에 구더기가 이렇게 간다고요. 그걸 우리는 먹었어요” “밤마다 성폭행을 당해야 했어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 ‘선감학원’에 온 아이들의 2/3는 부모나 연고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길에서 막무가내로 경찰이나 공무원들에 의해 ‘수집’되었다. 선감학원에 입소한 후, 가족이 있다고 말하면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폭력과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상당수의 아이들이 섬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갯벌과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 4,691명의 아이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아동 삼청교육대’라 불리는 선감학원의 운영주체는 국가였다. 경기도가 보관하고 있는 4,691명의 선감학원 원아대장 기록에 의하면 선감학원에서 사망한 아동은 24명. 그러나 피해생존자들은 실제로 사망한 아동의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고 말한다. 2017년, 전문가들이 GPR(지하탐지레이터) 탐사를 통해 선감도의 한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유골들을 조사한 결과, 매장된 시신은 150구 이상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상규명과 유해 발굴은 숙제로 남아있다. # 선감학원에서 형제복지원으로 ? 숨겨진 일제의 그늘 제작진은 피해생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피해생존자 중 성인이 된 이후 ‘형제복지원’으로, ‘삼청교육대’로 다시 끌려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또다시 끌려가야만 했던 걸까? 아이들을 강제로 수용시켜 쓸 만한 인적자원으로 개조하려던 일제의 계획은 해방 이후 군사정권에 그대로 대물림돼 각종 인권유린 시설을 탄생시켰다. 형제복지원, 서산개척단, 삼청교육대 등 수많은 인권유린시설의 뿌리는 바로 일제가 만든 선감학원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선감학원을 설립했고, 발전시켰으며, 은폐했는가? 취재를 하던 중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숨겨졌던 대한민국 사회복지사업의 어두운 그늘이 방송을 통해 최초로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