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8일, 차가운 바람이 불던 제주. 외진 곳에 있어 인적이 드문 애월읍 고내봉 인근 농업용 배수로에서 여성변사체가 발견됐다. 그녀의 정체는 시신발견 일주일 전인 2월 1일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고 난 후 실종된 양수정(가명)씨. 지인들은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수정(가명)씨가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부모님을 위하는 착한 딸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배수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수사 초기에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쟁점은 바로 사망시간에 대한 미스터리. 실종 당일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추정한 경찰에 반해, 부검 결과는 시신의 부패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과 위 속 내용물 중 마지막으로 먹었던 삼겹살 등의 음식물이 없는 점을 통해 시신 발견 24시간 이내에 사망했을 것이라고 나왔다. 주요 용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던 택시기사 박 씨는 알리바이가 입증되었고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시간이 흘러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는듯 했지만 수사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던 경찰은 몇 차례의 동물실험 끝에 배수로의 응달과 차가운 제주 바람이 만나 냉장 효과를 만들어내 시신의 부패를 늦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망 시간의 미스터리가 풀리고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미세증거가 과거와 달리 증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지난 2018년 5월, 마침내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됐다. 용의자의 정체는 바로 9년 전 알리바이를 입증하며 용의선상에서 배제된 택시기사 박 씨. 그러나 그는 무죄를 주장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지문과 유전자 등 직접증거가 전무하고 미세섬유 등 간접증거만 있는 탓에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2019년 7월 11일 열린 1심 재판의 결과는 무죄. 검찰은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2020년 7월 8일 이어진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의 판결만이 남은 지금... 배수로 속 진실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누가 그녀를 살해했나?